1부, 경제신문에서 연예 소식을?

 


 

2014년 더위가 가시고 날이 시원해질 즈음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이력서는커녕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 없었으나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시원스레 사직서를 제출했다.

 

10월쯤부터 다시 구직활동을 시작했으나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이력서를 넣으면 대부분 떨어지고 몇 군데는 서류합격을 했지만 면접에서 탈락했다. 지원한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수도권에 위치한 탓에 서류합격을 하더라도 면접 보러 오르내리는 교통비가 만만찮았다.

 

점점 마음이 다급해지던 중 한 매체에 합격했다. 2014년의 막바지인 12월이었다. 합격한 매체는 서울에 있는 인터넷 경제신문.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해당 매체에 대해 알아봤더니 IT제품에 대한 소식과 함께 기업분석 등이 주를 이뤘다. 구직활동으로 지쳐가던 시기라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함께 합격한 10명의 미생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첫 과제는 기업에서 보내온 보도 자료를 스트레이트 기사로 옮기는 것이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주고 곧바로 실습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10명이 같은 보도 자료를 가지고 기사를 작성하며 서로의 글을 살피는 식으로 진행됐다. 다음 날부터는 두 명이서 한 자료를 맡았다. 10, 15분 정도의 시간을 주고 그 시간 내에 글을 완성해야 했다. 틀린 부분을 지적하면서 회사에서 쓰이는 표현 등을 숙지시키는 과정이었다.

 

회사에 입사하고 2주 차부터 검색어 기사’(어뷰징)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키워드에 대해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용하는 키워드 대부분이 네이버 인기검색어였고 그중 일부가 다음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정보를 기사로 써 기사 클릭 수(사이트 방문자 수)를 늘리는 게 목적이다.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와 핫토픽 키워드.


함께 뽑힌 인턴 중에는 언론사 경력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검색어 기사를 경험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경험은커녕 구체적인 정보조차 없는 상태였다. 나 역시 어뷰징이라는 단어로 짐작했을 때 같은 기사를 조금씩 바꿔서 계속 노출하는 것정도로만 인지했다.

 

이런 초짜들에게 선배는 여러 가지 팁을 던져줬다. 검색어 키워드로 기사를 쓰되 타 언론사들과는 다른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라거나 검색어의 단어는 4~5회 이상 반복해서 쓰라는 것. 그리고 내용은 크게 중요치 않으니 제목을 잘 뽑으라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이런 검색어 기사는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좋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제목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단어를 4~5회 이상 반복하라는 거나 내용이 중요치 않다는 게 의아했다. 자극적인 제목이라는 것에도 애매했다. 경제기사에서 자극적인 내용이라니. ‘삼성, 네이버 인수 시도하다따위의 과장된 표현인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인터넷 경제신문사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연예 관련 소식을 다루고 있었다. 온통 몸매가 어쩌니, 입었니 벗었니 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떠나 경제 매체에서 이런 걸 써도 되는 건가?’라는 의문부터 먼저 들었다.

 

실습에 들어갈 무렵, 탤런트 클라라와 연예기획사 폴라리스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었다. ‘클라라폴라리스등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검색어 순위권을 차지했다. 이에 대한 기사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처음부터 막혔다. 클라라가 누군지 모르는데 클라라를 가지고 15분 안에 기사를 쓰는 것이 어려웠다. 이에 선배에게 글의 내용은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질문을 했고, 선배는 내용은 안 중요하니 대충 적거나 베껴오라고 대답했다. 최근 거 말고 예전에 다른 언론사에서 낸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문체만 바꾸면 된다고. 제목과 내용이 어느 정도 일치할 수 있도록 꾸미기만 하면 된다고.

 

내용의 문제가 꺼림칙하게 넘어가고 나서는 제목선정이 어려웠다. ‘클라라와 폴라리스, 법적 분쟁같은 평범한 제목을 붙였다가 호되게 혼났다. 몇 차례 선배가 원하는 기준점을 넘지 못해 종일 욕만 먹다가 1시간 만에 클라라, 속옷만 걸친 채 소파에서라는 제목을 달았다. 과거에 클라라가 찍은 화보를 보면서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은 조회수 25000을 넘어 그날 가장 많이 읽힌 기사가 됐다.



열흘쯤 검색어 기사를 쓰면서 알게 됐다. 유명인사에 대한 글, 특히 노출이 많은 사진을 포함한 글을 쓴다면 많이 읽힌다는 것을. 실시간 검색어도 무의미했다. 아이유, 수지, 전지현 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소식을 올리면 그 자체만으로 어느 정도의 클릭 수가 보장됐다. 거기에 야시시한 사진이 함께한다면 폭발적인 조회수를 보였다. 나중에는 처음에 고생했던 제목 달기도 어렵지 않았다. 노출이 많은, 화보 등의 사진과 그 모습을 묘사한 제목이면 되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가수 수지(miss A 소속)가 탄산음료 CF를 촬영한 적이 있다. CF는 물이 쏟아지는 클럽 풍의 배경에 수지가 흠뻑 젖어가며 춤을 추는 내용이다.


 

수지를 키워드로 쓸 때 이 CF 영상의 한 장면을 캡처해서 쓴다. 그리고 제목으로는 <수지, 국민 여동생에서 여인으로><수지, 흠뻑 젖은 채 남성에게 같이”> 정도로만 달아도 성공이다. 이 성공이 누구를 위한 성공인지, 옳은 것인지의 문제는 논외로 하고서 말이다.

 

이렇게 작성된 기사들은 기자의 바이라인이 달리는 게 아니라 뉴스팀이나 인터넷팀등으로 나가게 된다. 종래에는 이것마저도 바뀌어 회사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기자명으로 작성했다. 어째서 본인의 바이라인을 달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인지, 복잡한 책임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인지.





2015/05/29 - [후기] - 메이저 언론 낚시기사 알바 체험 해봤더니 - 2


Posted by 개척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