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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1 수호지? 수호전!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

수호전 표지.



내 인생 최고의 책 삼국지
(三國志)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 초등학생 무렵 삼국지에 빠졌다가 처음 접한 책이다.

 

워낙 어린 시절 접했던 수호전은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동경할만한, 공감할만한 인물이 넘쳐났던 삼국지에 비해 수호전의 인물들은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수호전 108 두령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협()에 공감하지 못 하는 게 주된 이유다.


하지만 나이가 든 뒤에 접한 수호전은 기억처럼 재미없기만 한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경남도민일보의 구주모 사장이 쓴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수호전을 소개하며, 동시에 수호전을 다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먼저 수호전 얘기를 해보자. 수호전은 양산박 108 두령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108명씩이나 되는 인물이 모두 주인공이니만큼 이야기도 방대하다. 물론 108명 모두를 집중 조명하는 건 아니다. 천강성이라 불리는 36명과 몇몇 인물들이 주연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조연 수준에 그친다.

 

전반적인 내용은 각각의 삶을 살던 이가 인연을 맺고, 양산박에 모이는 이야기다. 많은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사연을 가지고 모인 만큼 저마다의 팬층(?)을 공략한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여기까지가 약자의 억울함을 대변하며 송나라에 반하는 소설 수호전이었다면, 이후부터는 조금 뜬금없다. 양산박의 두령으로 지내던 송강 등이 송나라로 귀순하는 것. 그러다 소설 막바지에 양산박 호걸들의 떼죽음 당하며 허무하게 소설이 마무리된다.

 

개성 있고 매력적인 전반부에 비해 설득력이 약한 후반부는 어린 시절의 내가 <수호전>재미없다고 평가하게 된 계기였고, 이후 읽었을 때도 전반 108명이 모일 때까지의 서술 방식이 특이한 옴니버스식 소설정도의 감상만 품었다.

 

어째서 이 정도의 소설이 삼국지, 서유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가, 하는 생각도 많았었지만 따로 찾아보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이번 기회에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를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먼저 수호전은 김성탄이 첨삭한 71회본과 이탁오의 100, 120회본이 있다고 한다. 내가 읽었던 수호전은 이문열의 <수호지>였다. 이문열의 수호지는 총 10권 분량인데, 김성탄본인 71회본까지가 1~6권이라고 한다. 7~10권은 이탁오본이라고.

 

수호전을 찬양하는 이들이 권하는 건 71회까지의 김성탄본이다. 이후 양산박의 호걸들이 송나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이야기들이 담긴 이탁오본은 그리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내 생각에도 수호전의 108명이 갑자기 순한 양으로 변해 송나라에 돌아가지 않았다면 어린 시절 그리 박한 취급은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에서는 이런 나의 마음을 대변하듯, 서문부터 김성탄본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리고 수호전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배려해 수호전은 어떤 책인지, 어떤 부분을 조명해야 할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책의 전개는 양산박 108명의 호걸 중 저자가 꼽은 수호전의 주요 인물’(송강, 노지심, 임충, 이규, 양지 등)의 일화를 언급하며, 그 일화에 대한 주석을 다는 형식이다. 배경지식이 약한 독자로서는 알아챌 수 없는 부분도 당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해 알려준다. 수호전과 등장인물을 평가하는 이들의 견해도 소개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매끄럽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학자들은 이를 지역이란 한계에 갇혀 있던사람들이 전국적 교제망을 지닌 관료조직을 선망하는 마음에서 만들어낸 공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공상은 민중들이 열망한 것이기도 하다. 욕심 많고 부도덕한 서리(와 그 아래 아역)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인종이었다. 그래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송강처럼 훌륭한 서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역설이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는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 100p, 송강 같은 서리를 갈망한 사회

 

이후 노지심이 보여주는 행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노달과 석가. 노달은 의협심에 불타는 거친 본성을, 석가는 불법에 발을 디딘 이런저런 상황을 말한다. 이 둘은 격렬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그런 갈등을 해학적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 133p, 엄청난 강도로 다가오는 이타행

 

수호전의 여러 내용을 소개하는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정의. 책에서는 수탈당하는 백성들, 사회의 부조리 등 부패된 권력에 고통받는 백성들과 그들을 돕는 양산박 영웅들의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부도덕한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과,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술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언급됐는데, 이는 수호전 자체에 술과 관련된 일화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자의 술 사랑이 섞인 것은 아닌가 하는 작은 의심도 든다.(웃음)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는 소설 수호전을 읽은 적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읽어보게 만드는 효과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수호전을 읽어본 듯한 인상이었다.

 

이 책은 수호전을 사랑하고, 재미있게 읽은 이들을 위한 책은 아닌 듯하다. 나처럼 이탁오본에 실망해 수호전을 재미없는 책이라고 정의했던 사람이나, 읽어보고 싶었지만 접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저자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는 몰라도,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현실과 따로 생각하기가 어렵다. ‘부도덕한 지배계층을 비판하는 수호전과 이 책은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읽는 이의 가슴에 작은 촛불을 켜게 하는 듯한 책, 이것이 <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의 나의 감상이다.

Posted by 개척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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