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창원지역 민간인학살 사건을 다룬 책 <그질로 가가 안 온다 아이요>가 발간됐습니다.
책은 과거 민간인학살 사건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 그들의 유족을 만나 당시의 이야기와 현재까지의 삶을 조명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지나간 일을 왜 들추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지나간 일'일까요? 아직도 유족들은 가슴아파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들의 아픔은 '지나간 일'이 아닙니다
아름답지 않은, 있어서는 안 될 비극적인 과거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의 역사입니다.
13명의 유족들이 증언을 해 주었습니다. 유족 중 누군가는 떠올리기 힘든, 과거의 괴로운기억에 눈물 흘립니다. 또 다른 이는 오래된 기억이라며 담담하게 기억을 더듬습니다. 기록자 박영주 연구원은 더하고 뺄 것 없는,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직시하고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이를 위해 증언을 해 준 유족 13명의 이야기를 한 명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드릴 내용은 희생자 감영생 씨의 손자인 감효전 씨의 증언입니다.
희생자 감영생 씨는 일제시대에 와세다 대학 정치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신 분이라고 하는데요. 비밀 의열단 단원으로 6개 국어에 능통했고 독립투사 김원봉 장군에게 자금을 대어 주기도 하셨답니다.
독립 후 한학을 가르치던 중 1948년 밀양 2.7항쟁에 참여했다는 명목으로 밀양경찰서로 체포되었습니다. 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말하라며 갖은 고문과 협박을 당하셨다고 하는데요. 끝까지 말을 안 하고 '미 군정 포고령 위반죄'라는 죄목으로 5년 구형이 됐습니다.
이후 2년간 수감생활을 하다가 6.25 이후에 민간인학살이 자행되면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날짜가 7월 24일이라는 것도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다 지나간 일이 아닙니다. 사람도 그냥 죽인 게 아니고요. 돌덩이를 매달아 부모형제 모르게 죽였어요. 진실규명이되어 잘못한 거는 잘못했다고 해야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 아닙니까?"
소설 '밤의 눈'에서는 한국전쟁·보도연맹 등의 피해, 민간인 학살을 주된 내용으로 다뤘다. 저자는 이러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그 과거를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집필했으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또 각각의 스토리가 있다. 주인공격의 인물인 한용범, 그리고 옥구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군 첩보대 소속의 권혁 중사, 한용범의 동생 한시명과 그의 친구인 양숙희 등. 이전에 읽은 '토호세력의 뿌리'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지던 과거의 참사가 확연히 다가왔다.
다양한 인물들이 여러 사연을 전달하고 있기에 인물 보다는 소설의 전체적인 프레임을 보고자 했다. 하지만 책의 중반부, 한용범이 읍장 선거에 단독 출마를 하는 내용이 담긴 ‘죽음뿐인 과거가 무슨 소용이’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한용범이 소식이 끊겼던 양숙희와 만나는 대목이다.
“오빠도 아시겠지만 저는 죽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어요. 친정 아버지와 오빠, 어머니, 남편과 시아버지. 그들 중 제가 임종을 한 이는 오직 친정어머니 한 분뿐이었어요. 어떤 죽음이었든 그들은 모두 제 곁에서 떠났어요. 그런데도 죽은 사람들에게, 과거에 저는 칭칭 묶여 있어요. 죽음뿐인 과거가, 무덤 같은 과거가 저는 무섭고 싫어요. 도대체 그런 과거가 제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전쟁 나던 그해 여름, 제가 좀 더 강하게 견뎌 냈다면 혼자 몸으로 떳떳하게 살 수는 있었겠죠. 그건 알아요, 입장이 떳떳하다면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걸. 그렇지만 그 다르다는 것도 결국엔 죽은 사람들에게 붙잡혀있는 과거,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래서 전 사일구를 축복하지 못해요. 죽음밖에 남은 게 없는 역사가 제게 무슨 힘이 되고 소용이 되겠어요.”
“인생이든 역사든 희생과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제가 왜 모르겠어요. 그리고 사일구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걸 또 왜 모르겠어요. 제 입장에 따라 고집을 부리는 거지만 그래도 전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전 죽음뿐인 과거에 매여 살기 싫어요. 지금 저로서는 재준이를 데리고 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밖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오빠, 제발 저를 과거로 끌고 가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제 지난 형편도 아셔야죠. 부산 내려와 양품점을 하다 전쟁 때 혼자 된 여학교 친구와 얼마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어요. 혹시 걱정하실지 몰라서 드리는 말씀인데, 김기환 씨와는 오래전에 정리를 했어요. 제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는 저를, 이런 말밖에 하지 못하는 저를 제발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만약에 저를 다시 만나더라도 제발 과거로는 이끌지 마세요. 그게 진정 저를 위해 주는 일이에요.”
몇 가지 떠오르는 내용이 있었지만,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위의 말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한용범의 동생 한시명, 그의 친구인 양숙희의 대사다. 이 부분에 몰입하게 됐다.
옥구열이나 한용범 등의 인물들은 ‘흔한’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양숙희 역시 ‘흔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둘의 ‘흔한’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에서는 지금의 우리가 배우는, 이제는 역사 속의 인물들이 된 운동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후자에서는 ‘현실에 맞닥뜨린 평범한 사람’이다. 소설 속의 양숙희는 4.19 혁명을 마냥 반기질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많은 사람을 잃어버린, 기뻐할 수 없는 처지기에.
보도연맹 학살사건. / 출처 위키백과
필자는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4.19 관련 내용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물론 그런 내용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다만, 오히려 외면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런 마음이 소설 속의 양숙희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살아가기도 바쁜 때 ‘과거를 떠올려라!’고 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필자는 이제 지역의 언론 종사자로서 이러한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바라보고 기억하고. 그리고 앞으로는 ‘기록’을 하는 것이 의무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싶진 않다. ‘떠올려라!’고 하는 것의 폐해를 직접 겪었기에.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목표로 삼고자 한다.
덧붙이자면, 필자는 개인적으로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는 말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말을 종종 되뇐다. 제각기 개성이 있는 만큼, 그 개성만큼의 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슬퍼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이를 표현하느냐, 아니면 속으로 감추느냐는 각자의 판단이다. 허튼소리일지 모르나 부디 사람들에게 ‘슬퍼하라!’고 강요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노란 리본을 달지 않더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그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1년 전의 사고로 304명의 아까운 생명이 사라졌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이 슬퍼하고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그때 사라진 다른 목숨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잊혀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세월호의 수색·구조 활동을 위해 헌신하다가 돌아가신 구조대원분들. 2015년 4월 16일. 필자는 적어도 오늘 하루, 세월호 희생자 304명과 함께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