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실록에서 지워진 왕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무려 여왕이란다. 상당히 파격적인 소재다. 피플파워에서 출간한 소설 <혜주>의 이야기다.
책을 읽기 전 저자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저자에 대해 알면 그만큼 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살펴본 책날개 부분의 작가소개는 짤막한 데다가 이상했다. ‘지난 30여 년간 역사 연구와 저술을 해왔다. 더 이상의 작가 소개는 원하지 않았다’ 라니.
책 속에서 시간은 현대에서 과거로,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 현대의 인물인 ‘송 선생’이 서실에서 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조선의 여왕’에 대해 다루는 골동품 책을 발견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과거, 혜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공주 혜주는 특별할 것 없는,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로 그려진다. 자신을 가꾸고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10대 중반의 여자아이. 하지만 후계를 두지 않았던 선왕 광조가 급사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조정 대신들의 합의로 결국 열다섯 살의 공주 혜주는 여왕 혜주가 되었다. 성군이 될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여왕이 된 혜주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추천으로 인사를 단행한다. ‘숭유억불(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부정하는 정책)’이라는 당시 조선의 정책에 반하는 인사였고, 그 과정에서 반대하는 신료들의 의견을 외면하고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였다. 측근 정치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섹스 파트너격인 ‘정인’을 두고 색(色)에 빠지고 정치를 돌보지 않았다.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두물섬 수몰 사고에서 혜주는 사안의 중대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이를 무시한다.
“회운사에서 당일 저도 그 보고를 받았습니다만, 저로선 도저히 납득하기 힘듭니다. 청년들은 헤엄쳐 나왔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했나요? 물가에 사는 사람들이 헤엄도 하나 못 치나요? 그러고 섬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평소부터 물난리에 만전을 기했어야지요.” - 280쪽
책의 내용은 짤막하게 요약할 수 있다. 순수하고 평범했을 공주 혜주가 여왕이 되고 폭군으로 변해가는 내용이다. 준비되지 못한 이가 권력의 중심에 섰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그리고 동시에 그런 이를 이용하는 정치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이고,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원시원한 전개와 책의 에피소드들도 재밌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책을 읽고 드는 ‘감상’이 더 재밌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여왕이라거나 물에서 난 사고, 측근 정치 등. 자연스레 현실이 겹친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이 책을 ‘불온서적’이라 평했다고 한다. 공감한다.
“이번 사태의 최고 중죄인은 단연 주상이십니다. 설사 자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자격 없는 자가 왕위에 올라 왕실을 능멸한 죄, 게다가 4년간의 재위 기간 동안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면서 국정을 파탄시키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 죄도 결코 가볍지 않사옵니다. 이를 종합해 보건대 주상에게는 사약을 내리는 것이 마땅한 줄로 사료되옵니다.” - 387쪽
혜주 정빈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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