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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01 [요즘 20대의 생각] 창원대학교 이현아 씨

"안녕들하십니까? 저는 안녕해지고 싶습니다"

 

 

대학생. 참 묘한 신분이다. '학생'이다 보니 어리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이로는 어엿한 성인이다. 물론 월반이나 검정고시를 통해 미성년도 대학생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 20살이 되면서 대학교에 입학하는 현실에서는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지금, 대학생 그리고 20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열심히 뛰고 있는 대학생을 찾아갔다.

 

 

인천에서 태어난 '진짜 경남 사람'

 

창원대학교 회계학과 4학년. 이것이 이현아 씨를 소개하는 신분이다. 그가 자취를 하고 있는 창원대 인근에서 만나기로 하고 찾아갔다. 채현국 어르신의 강연에서 스치듯 얼굴을 본 게 다였기에 혹시 놓칠세라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알아채지 못할까 봐 카메라까지 꺼내 들고 있었다. 다행히 서로를 알아채고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옮겼다.

 

깔끔하고 조용한 외곽의 카페로 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호구 조사에 들어갔다.

 

"태어난 곳은 인천이에요. 하지만 워낙 유년 시절이었고, 경남지역에서 쭉 자라왔습니다. ··고 모두 김해, 창원에서 나왔어요. 대학교도 창원이니 '진짜 경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창원대학교 이현아 학생


 

 

원치 않았던 학과, 진로의 고민

 

이현아(22) 씨는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동시에 복수전공으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있다. 4학년이 돼서야 선택한 복수전공이다. 4학년에 복수전공을 하는 것이 유별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흔치 않은 선택이기는 하다.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다면 대학 원서를 쓰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학과를 다시 선택하고 싶거든요. 회계학은 제가 원해서 선택한 학과가 아니에요. 부모님의 권유로 회계학을 전공했죠. 여자가 회계학을 공부하면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회계학과 가서 취업이나 해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불가능하겠지만 과거로 돌아간다면 사학과나 철학과를 가고 싶네요. 흥미가 있어서."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택한 회계학에 많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말이 '권유', 미성년인 그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고 털어놓는 그였다. 때문일까. 국제관계학의 이야기를 하는 그의 표정은 밝았다. 국가 간의 관계를 비롯한 폭넓은 분야를 공부하는 응용학문인 국제관계학이 적성에 맞는 것일까.

 

"3학년까지 무척 조용한 대학생활을 했어요. 출석하고 시험 치고. 회계학을 공부하지만 '회계윤리'의 중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했죠. 자연히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거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택한 것이 국제관계학이죠. 주변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해요. '취업 걱정을 해야 할 시기에 왜 복수전공을 하느냐'는 내용이었죠.“



2014년 4월 28일에 진행한 '창원대, 가만히 있으라' 행사 /이시우 기자



 

안녕들 하느냐는 물음

 

'창원 안녕들하십니까'(안녕들)라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현아 씨는 대자보를 통해 사람들, 사회와 소통하는 것을 꿈꾼다. 갖가지 사회 문제에도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나 대학 내 문제를 다루는가 하면 노동자 편에 서서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 취업 걱정에 한창일 대학교 4학년, 무엇이 그를 밖으로 나오게 했을까 싶다.

 

"세월호 사건이 계기예요. 이전부터 많은 생각을 했지만 밖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을 외부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응어리진 제 마음을 대자보로 썼는데, 한 번 써보니까 할 만하더라고요. 이후로는 목소리를 내는데 맛을 들였다고 해야 하나?"

 

2013년 말부터 청년세대의 화제로 떠오른 '안녕들'은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됐다. '창원 안녕들'은 지역 현안과 적극적으로 결합해 단순히 목소리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구성원도 제각각이다. 창원대 학생뿐만 아니라 지역 내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안녕들은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대자보를 붙일 수 있는 '게시판'이라는 공간에서 모두가 소통하는 게 안녕들의 특징이에요. 학생회를 하던 친구가 대자보를 붙이는가 하면 저처럼 어쩌다가 참여하는 친구도 있고. 안녕들을 통해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 제 고민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그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대학을 향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창원대, 가만히 있으라' 행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은 지역 내 대학생들과 청년단체 활동가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학생이 뭘 안다고 나서느냐,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사회에서 대학생들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자는 생각에 이런저런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그렇다고 저희가 구체적인 연간계획을 짠다거나 하는 건 아니예요."(웃음)

 


2014년 9월 19일에 진행한 창원대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 행사 /김두천 기자



 

최악으로 치닫는 취업률

 

취업난, 청년실업의 문제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52월에 발표한 통계청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실업률이 11%를 기록했다. 이는 IMF 이후 최악의 수치이며, 미디어나 주변에서 청년실업자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는 이제 익숙하다. 자연스레 대학생을 비롯한 20대 청년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 됐다.

 

"뭐 먹고 살지, 라는 고민이 저나 또래 사람들 사이의 가장 큰 고민인 것 같아요. 연애나 주거, 대학, 인간관계 등. 제각기 다양한 고민을 가지고 있겠지만, 취업만큼은 대부분이 공유하는 공통된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현아 씨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뿌옇기만 한 취업이라는 허상과 팍팍한 현실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마냥 좌절하고 있지만은 않다.

 

"최근 한 선배와 얘기를 나눴어요. 일찍 취업한 선배인데, 저를 만나고 싶다고. 제가 이렇게 방탕(?)하게 살고 있으니까 궁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선배는 처음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만족한다는 생각에 봉급을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했어요. 하지만 3개월 정도 다닌 지금에는 돈을 적게 받더라도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을 가고 싶다고. 당장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취직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좋은 직장'이라는 말이 참 모호하거든요. 단순히 돈을 많이 주는 자리는 아닌 건 분명하죠. 지금은 같이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까, 사회에 건강한 힘을 줄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사회 운동을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어요. 확정 짓지는 못했지만 제 일을 하면서도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자 하는 게 지금의 생각입니다."

 

 

"5·7포세대, 그런 건 누가 짓는 거죠?"

 

최근 청년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가지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합성어인 '청년 실신'이나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낮은 급여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이케아 세대'. 그중에서도 '5포세대', '7포세대'라는 말은 유독 많이 알려졌다. 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을 포기한다는 5포세대, 이에 더해 인간관계·꿈까지 포기했다는 7포세대. 이에 이현아 씨는 쓴소리를 했다.

 

"일단 저는 처음 듣는 용어네요. 워낙 다양한 말들이 있다 보니. 누가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청년들이 취업을 포기해요? 인간관계와 꿈마저 포기했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청년들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끊임없이 희망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있는 거죠. 포기라는 단어는 희망을 하지 않게 됐을 때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바라고 희망하고 있어요. 20대들은 자기가 뭐라고 불리는지도 몰라요. 당장 눈앞의 일도 해결하기 힘든 걸요."

 

''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에서는 어린이들과 청년들에게 꿈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꿈이라는 녀석은 형이상학적인, 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꿈이 없다'고 하면 질책하는 사회다 보니 꿈에 대해 고민을 할 시간조차 없지 않은가.

 

"저에게 꿈이란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라는 미래지향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여태껏 제가 쌓아온 것이 무엇이 있는지. 이를 토대로 설정하는 게 꿈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의미에서 제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무척 암울하죠. 제가 쌓아온 게 없어서. 자꾸만 앞만 보고 꿈을 생각하다 보니 꿈이 참 멀게만 느껴지는데요.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본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창원대학교 이현아 학생.


 

 

"20, 열심히 살아가고 있답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0대이니만큼 들을 이야기도 많다. 그중 청년취업과 함께 최저임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자취를 하면서 월세나 기타 관리비, 통신비 등을 아르바이트 임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생활의 유지가 불가능해요. 아무리 아껴 쓴다고 하더라도 마이너스가 되거든요.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최저한의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금액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업소들도 수없이 많고."

 

간선제 형태로 이뤄지는 창원대학교 총장 선거에도 이현아 씨는 목소리를 냈었다. 총장 후보들에게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공개 질의서'를 제출하는 한편 소견발표회에 참석해 질문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후보들 모두 질의서에 답변하지 않았고 소견 발표회에서도 질문 시간이 따로 없었음을 토로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학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것 같아요. 학생들이 대학에 대해 회의적이게 됐어요. 대학에서 배운 것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이어가는 게 보통이니. 그나마 소통을 요구하더라도 응해주지 않고요. 인문·예술 대학 학과들의 폐과나 통폐합에 대해서도 아쉬워요. 취업률이 대학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아닐 텐데. 대학이 점점 기업화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이 아니겠죠."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그. 풀리지 않는 고민이지만 지금은 주변 사람들과 그 고민을 공유하며 함께 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젊은 세대로서 어른 세대에게 바라는 것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우리에게 강요하지는 말아줬으면 해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정답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그 세대가 아니기에 맞다, 아니다를 정의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방법적인 문제나 사고방식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언이라면 좋은 양분이 되겠지만, 강요라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청년들, 열심히 살고 있어요."




- 피플파워 201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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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개척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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