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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19 피와 땀, 눈물을 딛고 올라선 토호세력

무겁게 가라앉은, 충격적인 이야기. ‘토호세력의 뿌리를 통해 알 수 있는 지역의 과거사다. 필자는 19891231일 부산에서 태어나 1992년 무렵부터 쭉 경남 김해에서 자랐다. , 2년가량 경북 영천의 할머니 댁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마산이라는 도시는 멀면서도 가까운 도시다. 부산의 바로 옆 도시, 조금은 멀지만 큰아버지가 계신 익숙한 도시 창원.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마산. 어린 시절의 내게 마산은 이러한 이미지였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남대학교로 입학하게 됐다. 이때서야 마산이라는 도시를 인지했다. 물론 그전에도 이름이야 익히 들어온 도시지만, 아직까지도 가본 적 없는 울산·양산처럼 지도상의 거리보다 멀게 느껴진 도시였음에는 분명하다. 합성동에서 오동동을 거쳐 월영동까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마산의 모습을 조금씩 바라봤다. 바로 옆 도시인 창원에 비해 덜 정돈된, 하지만 사람냄새 나는 도시. 그런 도시에 이 같은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 경남대에서 수학하던 시절 3·15의거나 10·18 부마항쟁에 대해 이름이나마 들어본 적은 있다. 하지만 철없던 시절 금세 잊어버리고….




 

책에서는 필자가 외면했던 과거보다 더욱 먼, 광복 이후부터 1980년 무렵까지의 마산과 경남을 조명하고 있다. 시종일관 충격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있으나 그중 가장 큰 충격은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이다. 수박 겉핥기 식이나마 알고 있던 다른 사건에 비해 그 규모와 참혹함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 심지어는 이게 진짜라고?’하는 마음에 검색을 했다. 책에서 사실을 전달한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믿기 힘든 사건이다. 그리고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이 일로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은 보상다운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잃은 목숨을 어떻게 보상하겠느냐마는 부족하더라도 사과나 어떠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러나 2008년에 이르러서야 국가 차원에서 조치(고 노무현 대통령이 울산 국민보도연맹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취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보도연맹사건 외에 이은상에 대해서도 크게 놀랐다. 이은상이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마산 곳곳에 있는 가고파’(노래, 축제, 놀이공원, 아파트 명 등)가 이 사람 때문에 지어졌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창원에 사는 큰아버지 내외에겐 마산 지역의 몇 안되는 위인이라는 설명도 들었기에 더 놀랍다.

 

이렇게 비극적인 과거사를 딛고 토호세력으로 거듭나게 된 이들에 대해서는 고민이다. 이은상·이용범 등의 인물들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혹은 그 후손들이 눈에 띄게 악랄한 행태를 보인다면 마땅히 죄를 물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피해를 받은 이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토호세력의 뿌리에서 나오는 내용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음지에서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일들이 자행됐을 것이며,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기자가 올바른 역사관·지역관을 지니는 것 역시도.

 

지역민들이 정권이나 특정 세력에 의해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지역신문의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Posted by 개척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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